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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극복한 스멜쳐

MiLB/MLB Draft

by akira8190 2016. 6. 1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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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주 부히(Voorhees)에 있는 팀 스멜쳐와 크리스티나 스멜쳐의 집 TV위에는 한 장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거기에는 아들인 데빈 스멜쳐(Devin Smeltzer)가 필리스소속이었을때의 헤멀스(Cole Hamels)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일반적인 사진일 뿐이고, 추측컨데 헤멀스는 수백명의 필리스의 어린 팬들에게 이런 식의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0살의 데빈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으며, 심지어 눈썹조차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진은 데빈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시절(the longest year)이라는 것을 간파할 수 있으며, 당시 데빈은 암중에서도 희귀한 골반쪽에 횡문근육종(rhabdomyosarcoma)으로 인해 약물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병행하고 있을 당시였다.

"최근의 사진을 보면 결코 같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겁니다." 아버지인 팀 스멜쳐가 말했다.

데빈 스멜쳐가 암 진단을 받은 후 거의 11년 후인 지난 금요일 다저스는 데빈을 그들의 5라운드로 지명하였다.

 

최근 몇 년동안 스카우트들은 세일(Chris Sale)과 유사한 타입의 와인드업을 지닌 좌완 강속구 투수에게 빠져있었다. 휴스턴 외각에 있는 San Jacinto College에 재학중인 데빈은 지난 3일 주니어 칼리지 WS에서 한 경기동안 20K를 기록했었다. 그 경기는 그 전에도 비슷하면서도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써 일부 팀들은 그들의 드레프트 보드에서 스멜쳐의 순위를 올렸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9살때 병원에서 인생을 바꿔놓을 병원행이 없었더라면 드레프트 보드에도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암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제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데빈이 말했다. "지금 막 다저스에 의해 드레프트된 나에게 다시 그런 시련을 다시 겪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저는 또 오더라도 겪어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분명 제 삶과 제 가족들에게 힘든 것이었지만, 이게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지난 2005년 여름 나쁜 소식이 들려왔다. 스멜쳐는 또래의 아이들과 야구시합을 하다가 소변이 급해 화장실로 가고 있던 순간이었다. 이미 이전에는 의사를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요로감염증(urinary tract infection)에 관해 부정확한 판정만을 받았었다.

스멜쳐는 금요일 밤에 피칭이 예정되어 있었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여러 검사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방광이 주먹크키만큼 부풀어올랐을때는 그 날 야구경기는 없어졌으며, 심지어 몇 달 동안 그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조직검사 결과 스멜쳐는 암판정을 확진받았다.

"암 판정을 받은 후에 우리 아이가 왜 그 병에 결렸는지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스멜쳐의 어머니가 말했다.

스멜쳐는 자신이 걸린 암에 대해 환경적인 요인이나 가족력에 대해 전혀 추측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운이 좋게도 아주 공격적인 치료방법을 통해 스멜쳐의 병은 아주 호전적인 상태가 되었지만, 치료로 인해 식욕이 없어져버렸다. 몇 달간의 치료동안 스멜쳐의 체중은 50파운드(약 22.5kg)밖에 되질 않게 되었다.

"그게 어제였던거 같았습니다. 매우 힘들었어요." 스멜쳐가 말했다. "처음에는 아주 화가 났어요. 왜 하필 나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느 날은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병실에 있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너무 나쁜 상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해서 저는 암을 물리칠려는 생각을 가졌고, 제 삶을 이어나가야한다는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이미 최후 통보를 받은 상태였기때문에 그의 몸무게는 더 이상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시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혹은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의사가 튜브로 음식물(feeding tube)을 집어넣기도 했었다. 물론, 튜브로 삽입된 음식은 되려 좋지 않았으며, 식도에 튜브를 삽입하면서부터 야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를 상황이 되었다.

해서 음식을 먹을때 맛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이제는 야구가 당장 급한게 아니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직 어린 아이였을 뿐이었습니다." 어머니인 크리스티나가 말했다.

데빈은 의사의 조언을 너무 많이 따르지 않음으로써 경기장에 나가는게 용이해졌으며, 신체적인 접촉을 피하는 것도 쉬워졌다. 그는 분명 신체적으로 허약한 상태였지만, 굴하지 않음으로써 긴 치료기간동안에도 유스-야구에 불참하지 않게 되었다.

스멜쳐의 암은 그런 후 계속 호전되었고, 고딩졸업반때 파즈의 33라운드로 지명될 당시에는 아무런 걱정이 필요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온 힘을 다했으며, 암을 극복한 선수라는 평판을 받았다.

병원에 있을 당시 스멜쳐는 침대앞에 신상에 관한 것을 쓰는 란에 자신의 이름을 썼고, 그 아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대학 1학년은 Florida Gulf Coast University에서 다니고 2학년은 전학가서 San Jacinto College에 가겠다고 썼다. 세월(?)이 흘러 잉크가 말라 흐릿해졌으며, 결국 그의 바람은 뜻대로 되질 않았지만, 스멜쳐는 그 때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 병실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어요." 스멜쳐가 말했다. "다시 본다면 저는 그들을 찾을 수가 있을 겁니다."

다저스의 모자를 받는다면 스멜쳐는 (그 때처럼) 다시 작성표에 자신의 이름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양키스의 북동부 담당 스카우트인 하이디(Matt Hyde)는 몇 년전 자신의 담당구역에 고딩야구 유망주들을 위해 표준 조사표(질문서)를 보냈는데, 스멜쳐가 흥미로운 답변을 보내왔다.


" '야구 외에 당신의 목표는 무었인가요?' 하는 질문이었는데, 스멜쳐는 '암을 극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응하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하이디가 말했다. "우리는 즉시 'Swing For the Cure'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 이후 스멜쳐는 하이디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라큐스에서 유스-야구 소케이스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올해 11월이면 3회째가 되는 이 쇼케이스는 스멜쳐가 치료했던 St. Christopher’s Hospital을 포함해서 다양한 비영리단체로부터 총 8만불의 지원을 받았다.

물론, 어린 스멜쳐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일하게 암을 물리쳤다지만 성공적인 운동선수로써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스멜쳐는 3학년시즌을 위해 텍사스텍에 진학이 예정되어 있지만, 곧 공식적으로 다저스와 계약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

2월 24일 스멜쳐는 Wharton County Junior College에게 2이닝동안 10실점이나 하면서 결국 팀은 12대 9로 지고 말았다. 4월 7일에 재대결이 예상되었고, 스멜쳐는 등판을 자청했다. 그리고 그는 16K가 포함된 노-히터를 기록하며 팀을 6대 0 승리로 이끌었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그들 삶의 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멜쳐는 암을 극복함으로써 얻은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만큼은 진심을 담았다. 야구는 단순히 공놀이에 불과하다. 낮에 야구경기를 하고 밤에는 화학치료를 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심지어 당시 나이가 10살에 불과했던 소년이었던 그가 말이다.

"그냥 깨달았습니다. 야구를 해야겠다고요." 스멜쳐가 말했다. "몸이 너무 안좋을 수도 있지만, 걸을 수 있고, 야구를 할 수 있었을때는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았을때였습니다. 그때 아픈 아이들을 봤을때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말로써는 거기에 있는 상황들을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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