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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속에서도 살아남은 화이트

LA Dodgers/Dodgers News

by akira8190 2013. 12. 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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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or Los Angeles : Top Scout White Remains After Upheaval

다저스는 지난 13년간 플레이오프에서 승리를 하지 못했고, 구단주는 팀을 경영하는데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단장이 샌디에이고 팬과 논쟁을 벌이다가 해고를 당하면서 프런트 오피스는 엉망에 되어버렸다.

이게 2001년이었다. 댄 에반스(Dan Evans)가 다저스의 새로운 단장이 되면서 자신의 수하 3명을 데리고 빠르게 움직여나갔다. 빌 바바시(Bill Bavasi)가 마이너 디렉터로 왔으며, 앵킴(Kim Ng)이 어시스턴트 GM, 로건 화이트(Logan White)가 스카우팅 디렉터로 임명했다. 바바시는 엔젤스에서 팜 디렉터로 있었으며, 아버지는 과거(50~60년대) 다저스의 단장이기도 한 Buzzie Bavasi였다. 앵킴은 양키스에서 어시스턴트 단장을 하기도 했었다.

에반스가 기회를 준 인물이 화이트였는데, 화이트의 직책은 조직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었고, 당시 BA기준으로 다저스의 팜 랭킹은 28위였다.

"(이런 평가에 대해) 그 사람들이 관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우리의 트리플 A팀을 보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가서 하루 반( a day and a half)만에 곧장 와 버렸을 정도였습니다."

화이트가 이 직책을 맡기전까지 그는 이 일을 해본적이 없었다. 그는 볼티모어에서 스카우팅 슈퍼바이저였고, 나름의 게임 플렌을 가지고 있었으며, 축척된 자료도 가지고 있었다.

화이트와 에반스는 서로를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에반스의 친구들이 에반스에게 구면인 사람을 고용하라고 조언해줬지만, 여전히 많은 후보들가운데 결정하지 못한체 시간이 흘러갔다.

결정자 선정 중간쯤에 왔을때 에반스는 화이트와 다른 인물을 최종 후보자로 결정해버렸다. 그러고선 에반스는 마침내 화이트에게 그 직책을 주게 되었다.

이후 다저스는 5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일구어냈는데, 그 중 3번이나 NLCS까지 진출할 수가 있었다. 그 사이에 구단주가 2번, 단장이 2번, 감독이 3번 바뀌었다. 에반스는 2004년에 새로운 구단주가 오는 과정에서 해고당했고, 몇 달 후 바바시가 시애틀의 단장으로 가버렸고, 2011년에는 앵킴에 사무국으로 떠나버렸다.

화이트만이 유일한 생존자(last one standing)가 되었다.

"이 곳은 잠시잠깐만 머물 수 있는 곳인거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능있는 사람이 이 생존경쟁에서 더 나은 기회를 부여받습니다. 그(화이트)는 이 곳에서 가장 재능넘치는 사람중에 한 명일거에요." 에반스의 말이다.

그 재능이라는 것은 유망주를 가려내면서 연명할 수 있다.

화이트가 뽑은 첫 3년간의 드레프트는 BA의 Top 5 안에 들 수가 있었고, 그 사이뽑은 커쇼(Clayton Kershaw) & 캠프(Matt Kemp) & 마틴(Russell Martin) & 브락스턴(Jonathan Broxton) & 빌링슬리(Chad Billingsley) & 로니(James Loney)로 인해 2006년에는 팜에 재능으로 넘쳐나며 BA로부터 '올해의 조직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2008과 2009년에 2년 연속으로 NLCS에 진출하는 승리가 계속되면서, (아이러니하게) 불행의 씨앗은 경기장 밖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저스의 파산과 이전 구단주인 프랭크 멕코트(Frank McCourt)와 부인 제이미 멕코트(Jamie McCourt)의 이혼소송이 진행하면서부터 다저스는 돈이 부족하게 되었다.

2007년 부단장으로 승진했는데, 팀의 스카우트 전체를 관리하고 제대로 된 예산과 스텝이 없는 것은 제외하고는 굉장한 것처럼 보였다.

일본으로부터 구로다(Hiroki Kuroda)와 사이토(Takashi Saito)를 데려오는 화이트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지만, 남미쪽 시장의 선두주자였던 그들은 그걸 포기하고 말았다. 2010년에는 다른 대부분의 팀들은 남미쪽에 많은 돈을 쓰기 시작했을때 다저스는 돈이 없게 되었다.

당시 화이트는 다저스의 충직한 직원이었고, LA times에 이렇게 말한 바있다.

"우리가 하는 일에 실수가 있긴 했지만, 돈이 없었던건 아닙니다. 제가 조직에 합류한 이후 우리가 필요로하는 돈이 부족했던 적은 없었어요. 만약 10M을 추가적으로 쓸 수 있었더라면 더 많은 것을 이뤘을까요?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모든지 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죠."

지난 해 구겐하임이 다저스를 매입하고 첫 번째로 실시한 것이 쿠바 출신의 프윅(Yasiel Puig)을 영입한 것이다.

"쉬운게 아니었습니다. 돈이 없을때는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카드가 그것만이었고,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플레이하는 법을 배워야할 겁니다."

새로운 구단주 그룹은 화이트와 단장인 콜레티(Ned Colletti)에게 큰 그림을 그리라고 주문했다. 컵스가 솔러(Jorge Soler)와 계약에 근접해가고 있을때 구겐하임은 막 다저스 매입에 근접해가고 있었다.

이때 화이트는 다저스의 새로운 사장인 카스텐(Stan Kasten)에게 걱정하지말라고 말했다.

"우리가 해낼때야만이 제대로 된 녀석이 될 겁니다." 화이트가 카스텐에게 한 말이다.

(그 후) 몇 주내로 다저스는 3번의 연습타격만을 기반으로 프윅과 계약했다. 다저스 프렌차일즈 기록인 12M의 사이닝 보너스를 포함해서 총 42M의 계약은 업계 많은 사람들로 부터 질타를 받았는데, 심지어 프윅은 쿠바에서 마지막 시즌에 탈출시도로 인한 벌로 경기에 나오지도 못한 상태였다.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프윅이 우리 선수가 안되었더라도 그는 결국 다른 팀과 계약해서 잘 뛰었을 겁니다. 제가 어떤 선수를 믿는다면 그 선수와 계약할 것이며, 믿음이 있다면 되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일을 했을때는 스스로를 믿어야합니다."

돈이 인재를 끌어모으는 것은 비단 선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다저스의 아마추어 스카우팅 부사장이 된 화이트의 범위는 미국외에 지역은 포함되지 않았다. 카스텐은 지난 해 밥 엥글(Bob Engle)을 영입했고, 엥글은 그의 사단을 데리고 다저스에 합류했다.

그리고 지난 11월에 다저스는 로이 클락(Roy Clark)을 크로스체커로 영입했는데, 클락은 카스텐이 애틀란타와 워싱턴에서 같이 일했던 경력이 있으며, 두 조직의 팜을 모두 강력하게 만드는데 일조했었다.

"로이는 엄청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며 스카우팅과 선수육성부분에서 20년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뽑은 선수중에는 그냥저냥 빅리거뿐만 아니라 올스타출신도 있습니다. 그를 데려온 것은 스카우팅과 선수 육성에서 엄청난 도움이 될 것입니다."

클락이 화이트에게 추천을 해주고 그러지는 않겠지만, 다저스의 마지막 드레프트 결정을 할때는 함께할 것으로 예상된다. 콜레티가 화이트에게 클락의 영입가능성을 언급했을때 화이트는 흥분했다.

"클락은 우리 조직에 필요한 것을 잘 알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카스텐과 구단주 그룹은 업계에서 최고가 되게 만들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클락과 화이트의 관계는 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애틀 조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그곳에서 클락은 마이너리그 인스트럭터였고, 화이트는 마이너리거 투수였다. 이때 이미 화이트는 클락과 함께 트레이드에 대한 생각을 토론하고 있었는데, 재능있는 조지아주의 아마추어에 관한 드레프트에 관한 것을 농담형식으로 주고 받았었다.

지금은 토론토의 스카우트가 된 에반스는 화이트가 단장이 될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스카우트라는 것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오인될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실제로 화이트는 경기의 분석적인 측면 역시 잘 이해하고 있기도 하다.

"화이트는 스카우팅과 경기분석 두 군데 모두에서 능합니다."

올해 51세인 화이트는 가장 주목을받는 단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지만, 더이상은 아니다. 2007년 이후 단장직 인터뷰를 총 4번이나 했는데, 디백스 & 메츠 & 휴스턴 2번이었다.

"단장이 될 기회가 생기도록 계속해서 준비하지만, 그게 인생의 목표는 아닙니다. 단장이 되건 못되건 전 괜찮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은 가르치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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